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저스 혼스비 (문단 편집) == 평가 == 통산 타율이 무려 .358(홈 .359, 원정 .358)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3위[* 우타자로는 2위. 니그로리그 선수들을 제외하면 역대 우타자 1위.]다. 혼스비의 위에는 2명, 그 유명한 [[최초의 5인]]이자 당대 야구 황제였던 [[타이 콥]](.366)과 [[니그로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는 [[오스카 찰스턴]](.364)[* 이사람은 메이저리그 선수가 아니다.] 뿐이다. [[타이 콥]], [[에드 델라한티]], [[조시 깁슨]], 오스카 찰스턴과 함께 세계프로야구 역사에서 3시즌 4할을 기록한 대타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4할 타자]]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물.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타율 10위권에 들어가는 야수들 중 우타자는 혼스비와 에드 델라한티 뿐이다. 또한 콥(11회)과 [[토니 그윈]]-[[호너스 와그너]](8회) 다음으로 많은 7번의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6회 이상 수상자 7명 중에서 우타자는 그와 와그너 단 두 명 뿐이다. 그럼 단순한 똑딱이였는가하면 그것도 아닌게 통산 장타율 .577, 순장타율 218, OPS는 1.010이다. 2루수 중 메이저리그 최초로 300홈런을 기록한 사람[* 물론 2루수로 출전하지 않고 다른 포지션 출전 경기에서의 홈런도 포함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2루수 출전이다. 또한 그렇게 2루수로 분류되는 선수 중에 후대에 로저스 혼스비의 홈런 기록을 넘은 건, [[제프 켄트]]와 [[로빈슨 카노]] 단 둘 뿐이다. 데드볼 시대에 데뷔하여 전성기 시작 후에야 라이브볼로 넘어간 그가 아직도 2루수 통산 홈런 3위라는 사실은 라이브볼 시대 후배들도 따라올 수 없는 대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라 거의 공포 수준. 그야말로 2루수 세계의 괴물이라고 보면 된다. 로빈슨 카노는 약쟁이고, 로저스 혼스비가 데드볼 시대에 데뷔하지 않고 라이브볼 시대에 데뷔해서 타격 스타일을 중간에 바꾸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장타 타격을 연마했다면 제프 켄트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쳤을 것은 야만없도 아닐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데드볼시대와 라이브볼시대 모두에서 장타력을 보여줬기 때문. 사실상 야구 역사상 최고의 2루수 슬러거이다. ]이 로저스 혼스비다. 즉, 장타와 교타 양쪽 다 원톱 수준인 타격 달인이었다.[* 오히려 진짜 약점은 주루였다. 2루수치고는 체격이 컸고 달리기가 매우 느린 편이었다. 타격은 약점은 커녕, 강점이 없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배리 본즈]]와 함께 2000년대 초반 자이언츠의 살인타선을 이끌었던 역대급 공격형 2루수 [[제프 켄트]]의 커리어하이 성적과 통산성적이 비슷하다. 게다가 타율, 출루율 같은 건 제프 켄트 커리어하이조차 혼스비의 통산 성적에 비교도 못한다. 그야말로 역대 최강. 다만 초창기에는 장타 생산과는 거리가 있던 선수였다. 마른 체구에 몸쪽에 약점이 있었던 혼스비는 극단적으로 웅크린 채 타격을 했고 이로 인해 장타는 좀 적었다. 근데 이는 데드볼시대라 교타에 집중하는게 효율적이었던 영향도 있다. 그러나 체구가 붙으면서 몸을 편 채로 타격하고, 몸쪽 약점을 해결하면서 장타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혼스비가 몸쪽 약점을 해결한 방법은 아주 간단했는데 배터 박스 바깥 쪽에 자리잡고서 마치 타격 의지가 없는 것처럼 있다가 몸쪽 공이 들어오면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럼 바깥쪽은 어떻게 하고?'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원래 바깥쪽 코스를 좋아한데다, 팔도 긴 편이고, 더군다나 초창기 웅크린 타격 폼과 달리 넓은 존을 커버할 수 있는 펴진 폼으로 바꿨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타자로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열 다섯명[* 폴 히네스, 팁 오닐(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휴 더피]], [[냅 라조이]], [[타이 콥]], [[하이니 짐머맨]], [[로저스 혼스비]], [[지미 폭스]], 척 클라인, [[루 게릭]], 조 메드윅, [[테드 윌리엄스]], [[미키 맨틀]], [[프랭크 로빈슨]], [[칼 야스트렘스키]], [[미겔 카브레라]]까지 16명이지만, 팁 오닐이 아메리칸 리그 전신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선수라 빼서 15명인 것이다. 단, 내셔널 리그 출범 이후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기록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인정하는 경우가 많아(아닐 때도 있다. 메이저리그 측 19세기 기록 관리에서 가장 애매한 부분이다.) 넣기도 한다.]인데,[* 1967시즌 [[칼 야스트렘스키]]이후 45년간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었으나 2012시즌 [[미겔 카브레라]]가 역대 15번째 3관왕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걸 두 번 해낸 사람은 [[테드 윌리엄스]]와 혼스비 뿐이다.[* 그것도 혼스비는 3할대인 테드와 달리 두번 다 4할이었다.] 또한 4할 타율을 3번이나 달성해내면서[* 이건 [[에드 델라헌티]], [[타이 콥]], 로저스 혼스비 단 3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 1920년대의 내셔널리그를 지배했던 최고의 타자었다. 또한 한 시즌 4할 타격왕 겸 홈런왕을 2번이나 한 건 이 사람뿐이니, 그야말로 유일무이하다.[* 1번 한 것도 [[휴 더피]] 한명 뿐이다. 테드 윌리엄스는 4할 시즌이 홈런왕이 아니다. 트리플 크라운은 다 4할이 아닐때만 한 것이다.] 그것도 이 사람은 우타자인데, 그 미친 타율을 해낸 것이다. 프로 정신도 상당했는데, 몸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신문, 책, 영화도 보지않고 하루 12시간을 잤다. 눈을 보호해 선구안을 키우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테드 윌리엄스에게도 있다고 알려진)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신인 투수가 3연속 볼 판정을 받고 항의하자 심판이 "공이 스트라이크였으면 혼스비가 말해줬을걸?"이라고 일축해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치지 않으면 볼. 어느 정도의 선구안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우리나라 버전으론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 이 있다. 장효조 역시 KBO 역대 타격 1위] 특이한 타격폼 또한 그 선구안에 한몫했는데, 홈플레이트 정 반대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공을 기다렸다가 바깥쪽으로 공이 들어오는 족족 왼발을 앞으로 당겨버리며 모두 공략해냈다. 홈플레이트에서 멀찍이 떨어진 덕에 몸쪽 높은 공에 삼진을 당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공을 힘껏 잡아 당겨 장타를 양산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감독 겸 선수로도 뛰었는데 선수로만 뛸 때보다는 본인 성적은 안 나왔지만[* 일단 타석 자체가 지나치게 적어졌다. 당대 다른 레전드들은 30대에 감독을 해도 선수쪽에 더 집중한 경우도 많은데(타이 콥은 감독일때도 4할 200안타를 쳤었다. 혼스비도 감독 초반에는 그랬지만 팀을 옮기면서 출전수를 점점 확 줄여나갔다.), 혼스비는 감독 쪽에만 집중한게 누적 성적이 동급 레전드들보다 줄어드는데 영향을 주었고, 4000안타를 칠거라 예상되던 타격 천재였음에도 3000안타조차 안타깝게 못 쳤다.] 팀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기는 등 활약하였다. 이 우승이 피트 알렉산더의 마지막 질주이자 베이브 루스의 그 유명한 끝내기 도루자가 나온 우승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